삼성-애플 누구를 위한 특허인가

By | 2021-04-15
삼성-애플 누구를 위한 특허인가

“안드로이드를 괴멸시키기 위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던 스티브 잡스의 집착은 그의 사후 현실에 가까워졌다.

아직 미국 특허소송의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았고, 이후에도 항소를 통해 공방전은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10억 달러라는 배심원들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평결을 넘어 ‘카피캣’이라는 오명을 받게 됐고, 급성장했던 스마트폰 시장 성공도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업체 간 득실을 따지기 전에 ‘특허’의 본연의 뜻을 생각해 보자. 특허는 기술을 외부에 공개해 이를 산업의 발전에 기여시키고, 원 개발자의 권리도 정당하게 확보할 수 있게 한 것이 원래의 의도다.

그러나 삼성-애플의 소송전을 떠나 최근 특허분쟁을 살펴보면 본연의 뜻은 사라진지 오래며, 자신들의 이득을 지키기 위해 경쟁사의 행보를 옭죄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추격자를 봉쇄하기 위한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특허의 범위도 논란거리다. 경쟁사를 막기 위한 광의적이고도 모호한 특허가 지금도 수없이 등록되고 있으며, 이는 특허괴물(patent Troll)을 낳는 모태가 되고 있다.

이번에 배심원들에게 인정받은 애플의 디자인 특허 중 하나는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모양이며, 앞면이 평평하다’ 정도의 개념만을 담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른 어떤 기업도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든다.

그렇다면 보호해야 하는 기술의 기준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특허의 요건은 산업에 유용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신규성과 진보성을 담보해야 한다. 신규성이 떨어지는 일반적 디자인의 속성을 특정 기업이 독점한다면, 이는 진보가 아닌 산업의 퇴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 법원의 평결 이전, 유럽에서 벌어진 수많은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에서 일부 건을 제외하고 영국·네덜란드·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가 기각했다는 점을 주목해 보자. 이번 미국 배심원들의 평결이 편협한 자국보호주의의 한 단면으로 해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지난 6월 애플이 모토로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의 모호하고, 불합리한 특허 시스템을 비판했던 리차드 포스너 판사는 해당 소송을 기각했다. 그는 애플의 UI(사용자 환경)와 관련한 지나치게 광범위한 특허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삼성전자가 보유한 표준특허의 침해 불인정은 또 다른 면에서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표준기술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는 연구개발을 통해 만들어진다. 물론 표준특허는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FRAND 조항을 근간으로 삼고 있지만,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평결은 경쟁자를 막기 위한 모호하고 광의적인 특허는 인정한 반면, 산업의 발전기여에 한 축을 담당하는 표준특허는 단 한 건도 인정하지 않았다. 저렴한 로열티는 둘 째 치고, 침해 받아도 문제조차 안 되는 표준특허에 이제 누가 사력을 투입할 지 의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코노미스트가 “애플의 특허소송을 통해 시장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려 한다면, 이는 미국 혁신의 역사에 있어 매우 슬픈 일”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번 평결로 인해 벌어질 반대급부를 정확히 조명하고 있다.

게다가 평결 과정 역시 심사숙고 보다는 22시간만의 속전속결로 끝난 것도, 이번 소송의 복잡성과 IT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적절한지 묻고 싶다.

법률 블로그 Above The Law는 평결 안에 있는 용어들 만 이해하는데 3일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꼬집고, 특히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결정은 이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나왔다고 지적했다. Above The Law가 배심원들에게 물은 질문이다. “당신들은 동전 던지기를 한 것인가?”

또 워싱턴포스트는 “예상 외로 심리 후 3일 만에 이뤄진 빠르고 결단력 있는 배심원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으며, 영국의 가디언 역시 “홈코트(Home court) 이점의 극적인 사례”라고 비꼬았다.

무(無)에서 유(有)을 만들어 내는 연금술은 없다. 혁신은 이전의 혁신을 바탕으로 재창조된다. 애플이 제록스의 팰러앨토 연구센터(PARC)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비트맵 기술을 매킨토시에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IT업계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도둑질로 간주되곤 하지 않는가.

피카소의 말을 인용,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며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사람은 바로 ‘잡스’였다.

특허라는 기술산업 발전의 한 형태가 이번 소송 사례로 훼손될 가능성은 너무나 높다. 누구를 위한 특허인가. 기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작게는 이를 만든 기업을 위해서지만, 근본적으로 인류와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산업의 발전을 위해 이용되어야 하며 정당한 방법을 통해 지켜져야 한다